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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정조어찰첩
正祖御札帖
-
유물번호
고궁922_1 -
연대
-
재질
종이 -
크기(cm)
세로: 31.4, 가로: 19.7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정조어찰첩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쓴 어찰(御札)을 모아놓은 첩이다. 고궁923과 함께 각각 상권과 하권을 이룬다. 상권은 30면으로 되어 있으며 장황되어 있다. 표지는 능화판(菱花板)을 이용하여 만자문(卍字紋)을 찍은 하늘색 종이로 되어 있으며, 흰 비단의 제첨(題簽)이 붙어 있으나 제목은 쓰여 있지 않다. 편지지는 우측에 피봉(皮封)도 함께 배접(褙接)하였으며, 여백 부분은 금박이 뿌려진 색지를 사용하였다. 상권에는 17편의 편지를 수록하였다. 편지의 수신자는 정조의 후궁 유빈(綏嬪)박씨의 아버지인 박준원(朴準源)과 그 아들 박종보(朴宗輔), 박종경(朴宗慶) 등이다. 피봉에는 여신(汝臣), 주원(廚院), 낙동(駱洞), 보은(報恩), 은아(恩衙) 등의 수신처가 적혀 있다. '여신'은 박종보의 자(字)이며 사옹원(司饔院)을 가리키는 말인 '주원' 역시 사옹원 주부를 지냈던 박종보를 가리킨다. '낙동'은 유빈 박씨와의 가례(嘉禮) 이후 정조가 장인인 박준원에게 내려준 집으로, 박종보는 이 집에서 부친 박준원을 모시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은', '은아'는 박준원이 1788년부터 1790년까지 현감으로 재직한 보은(報恩) 관아(官衙)를 지칭한다.이 편지는 어찰첩 상권 1면으로 정조가 박종보에게 보낸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신(汝臣) 시사(侍史)에게오래지 않은 이때 편안한가. 보은(報恩) 관아에 문후(問候)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니 모름지기 곧 전송(傳送)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번거로움이 심해 이만 줄이네.
여신(汝臣) 시사(侍史)에게오래지 않은 이때 편안한가. 보은(報恩) 관아에 문후(問候)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니 모름지기 곧 전송(傳送)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번거로움이 심해 이만 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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