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안내
조각
국기판
國忌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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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번호
창덕20456 -
연대
1789년(정조 13년) ~ 1800년(정조 24년) -
재질
나무 / 피나무, 잣나무 -
크기(cm)
가로: 120.3cm, 세로: 44.8cm -
지정현황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국기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역대 왕과 왕비의 기일과 능호, 능의 소재지를 왕대 순으로 기록한 국기판(國忌板)으로 좌측에 원묘(園墓) 기일과 소재지가 이어진다. 영녕전에 조천된 임금은 묘호 상단에 '조(祧)'라고 표시하였다. 태조부터 진종비 효순왕후(1715∼1751년)까지 기록되어 있다. 영조계비 정순왕후(1745~1805년)의 자리가 공란으로 비워 있다. 원(園)의 경우 사도세자의 현륭원이 마지막으로 기재되어 있다. 사도세자가 1762년 5월 21일 사망후 수은묘(垂恩墓,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가 조성되었고,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영우원(永祐園)이라 격상하였으며, 1789년(정조 13년)에 원을 현재의 수원으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1815년(순조 15년)에 헌경왕후(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16년에 현륭원에 합장으로 원을 조성하였는데, 본 현판 현륭원의 기일이 사도세자의 것만 기록되어 있고, 좌측에 공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헌경왕후는 당시 생존해있던 것으로 보인다. 현륭원은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년)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자 능으로 격상되어 융릉이라 하였다. 원 다음에 묘(墓)는 문효세자(1728~1786년)의 효창묘(孝昌墓)까지 새겨져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사도세자의 능이 현륭원으로 칭해지는 1789년(정조 13년) 이후에서 정조가 사망하는 1800년(정조 24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전각에 걸려져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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