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안내
현판
명릉향대청술회
明陵香大廳述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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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번호
창덕20363 -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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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나무 -
크기(cm)
세로: 35.7, 가로: 103.5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명릉향대청술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영조〈英祖(재위 1724~1776년)〉가 1756년(영조 32) 가을에 숙종〈肅宗(재위 1674~1720년)〉과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1667~1701년)〉의 능인 명릉(明陵)을 참배했던 일을 돌아보며 느낀 감회를 적은 시를 새겨 명릉의 향대청(香大廳)에 걸었던 현판이다. 『영조문집보유(英祖文集補遺)』에 「명릉향대청술회병소지(明陵香大廳述懷幷小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승지 서명응〈徐命膺(1716~1787년)〉에게 쓰게 하여 새겨 만들었다. 향대청은 재실(齋室)의 부속 공간으로 제례 때 사용할 향을 보관한 건물이다.
명릉의 향대청(香大廳)에서 회포를 적다.
옛날 신묘년(1711) 내 나이 18살 적에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에 따라갔다.
이듬해 가을 총관으로 정릉(貞陵)을 지켰다.
신축년에 동위(銅闈)에 들어간 후 형님을 따라 명릉을 참배한 것이 두 번이다.
갑진년(1724)에 내가 왕이 된 후부터 지금까지 능원에 간 것이 49번이고 그중에 머물러 잔 것이12번이다.
갑술년 가을 생일날에는 본릉을 찾아갔다.
2년 뒤 병자년(1756) 가을 새벽, 내 나이 63살이 되던 해 또 본릉을 찾아갔다.
아! 올해 또 참배할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으리오?
근래에 장마 때문에 염려되고 백성들의 일이 염려됨으로 인해 행행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엄(嚴)을 하는 자가 날이 이미 활짝 개었다고 보고하니, 인하여 맑은 날씨에 예를 마치고 돌아오니 이것은 진실로 우리 조상님께서 백성을 위하는 뜻이다.
일에 따라서 감회가 일어나고 추모하는정이 갑절이나 된다.
아! 몸은 비록 돌아가나 마음은 이곳에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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