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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105_명릉의 향대청에 걸었던 현판_서헌강촬영_도록29.jpg

현판

명릉향대청술회

明陵香大廳述懷

  • 유물번호

    창덕20363
  • 연대

  • 재질

    나무
  • 크기(cm)

    세로: 35.7, 가로: 103.5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명릉향대청술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영조英祖(재위 1724~1776)1756(영조 32) 가을에 숙종肅宗(재위 1674~1720)과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1667~1701)의 능인 명릉(明陵)을 참배했던 일을 돌아보며 느낀 감회를 적은 시를 새겨 명릉의 향대청(香大廳)에 걸었던 현판이다. 영조문집보유(英祖文集補遺)명릉향대청술회병소지(明陵香大廳述懷幷小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승지 서명응徐命膺(1716~1787)에게 쓰게 하여 새겨 만들었다. 향대청은 재실(齋室)의 부속 공간으로 제례 때 사용할 향을 보관한 건물이다.

명릉의 향대청(香大廳)에서 회포를 적다.

옛날 신묘년(1711) 내 나이 18살 적에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에 따라갔다.

이듬해 가을 총관으로 정릉(貞陵)을 지켰다.

신축년에 동위(銅闈)에 들어간 후 형님을 따라 명릉을 참배한 것이 두 번이다.

갑진년(1724)에 내가 왕이 된 후부터 지금까지 능원에 간 것이 49번이고 그중에 머물러 잔 것이12번이다.

갑술년 가을 생일날에는 본릉을 찾아갔다.

2년 뒤 병자년(1756) 가을 새벽, 내 나이 63살이 되던 해 또 본릉을 찾아갔다.

! 올해 또 참배할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으리오?

근래에 장마 때문에 염려되고 백성들의 일이 염려됨으로 인해 행행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을 하는 자가 날이 이미 활짝 개었다고 보고하니, 인하여 맑은 날씨에 예를 마치고 돌아오니 이것은 진실로 우리 조상님께서 백성을 위하는 뜻이다.

일에 따라서 감회가 일어나고 추모하는정이 갑절이나 된다.

! 몸은 비록 돌아가나 마음은 이곳에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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