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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병조낭청지인
兵曹郞廳之印
-
유물번호
창덕18754 -
연대
1833년 -
재질
금속 -
크기(cm)
세로: 6.6cm, 가로: 6.7cm, 높이: 8.8cm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병조낭청지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1833년
관인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신표(信標)의 하나로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재질이나 크기 등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성문화되어 엄격히 규정되었다. 관인은 용도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관청인, 관직의 이름이 새겨진 관직인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문서의 서식과 임금의 결재를 나타내는 관인과 각종 패와 목제 물품에 불로 달구어 찍는 낙인(烙印)이 있다. 각 관청의 인장은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있는 기관은 당상관이, 그 이하의 관청은 그 기관의 장이 사용하였다.
병조의 낭청(郎廳)이 사용하던 관인이다. 낭청은 낭관이라고도 하며, 원래 관청의 실무를 보는 당하관에 해당하는 관원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을 통칭하게 되었다. 《인신등록印信謄錄》의 기록을 통해 병조당상지인(창덕18752)과 함께 1833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관인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신표(信標)의 하나로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재질이나 크기 등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성문화되어 엄격히 규정되었다. 관인은 용도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관청인, 관직의 이름이 새겨진 관직인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문서의 서식과 임금의 결재를 나타내는 관인과 각종 패와 목제 물품에 불로 달구어 찍는 낙인(烙印)이 있다. 각 관청의 인장은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있는 기관은 당상관이, 그 이하의 관청은 그 기관의 장이 사용하였다.
병조의 낭청(郎廳)이 사용하던 관인이다. 낭청은 낭관이라고도 하며, 원래 관청의 실무를 보는 당하관에 해당하는 관원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을 통칭하게 되었다. 《인신등록印信謄錄》의 기록을 통해 병조당상지인(창덕18752)과 함께 1833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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