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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석제 '길상여의' 인장
石製 吉祥如意 印章
-
유물번호
창덕7811 -
연대
-
재질
석인 -
크기(cm)
가로: 1.9, 세로: 1.2, 높이: 1.8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석제 '길상여의' 인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전(傳) 문팽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문팽(文彭, 1498~1573)은 중국 명(明) 중기의 문인 서화가로 문인화가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의 장남이다. 자는 수승(壽承), 호는 삼교(三橋)이며, 국자감 박사를 지내 문국박이라고 불렸다. 문팽은 인장이 전각예술로 승화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는 칼로 새기기 쉬운 화유석(花乳石)을 인장 재질로 본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때부터 문인들이 직접 인장을 새겨 자신의 심미관을 표현하게 되었다. 문팽은 당시 인풍에 대해 비판하며 한나라 인장의 예스러움을 따를 것을 주장하며 인장의 이론적 기초를 마려했다. 또한 인장의 옆면에 제작 기록이나 시문의 내용을 새기는 방각(傍刻)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문팽의 인장은 그 수가 적어 가치가 매우 높으나, 명성이 대단했던 만큼 그의 서체를 모방한 위작이 많이 전한다.
"길상여의"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기를 바라다'라는 뜻이다.
사용자: 전(傳) 문팽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문팽(文彭, 1498~1573)은 중국 명(明) 중기의 문인 서화가로 문인화가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의 장남이다. 자는 수승(壽承), 호는 삼교(三橋)이며, 국자감 박사를 지내 문국박이라고 불렸다. 문팽은 인장이 전각예술로 승화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는 칼로 새기기 쉬운 화유석(花乳石)을 인장 재질로 본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때부터 문인들이 직접 인장을 새겨 자신의 심미관을 표현하게 되었다. 문팽은 당시 인풍에 대해 비판하며 한나라 인장의 예스러움을 따를 것을 주장하며 인장의 이론적 기초를 마려했다. 또한 인장의 옆면에 제작 기록이나 시문의 내용을 새기는 방각(傍刻)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문팽의 인장은 그 수가 적어 가치가 매우 높으나, 명성이 대단했던 만큼 그의 서체를 모방한 위작이 많이 전한다.
"길상여의"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기를 바라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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