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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석제 '길상여의' 인장
石製 吉祥如意 印章
-
유물번호
창덕7810 -
연대
-
재질
석인 -
크기(cm)
가로: 2.6, 세로: 2.6, 높이: 8.1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석제 '길상여의' 인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대전(大篆)
사용자: 조희룡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여항 화가로서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 등이 있다. 조희룡은 추사 문하의 제일인자로서 매화 그림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묵장의 영수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여항 문인들 사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해외난묵(海外蘭墨)》, 《일석산방소고(一石山房小稿)》 등의 여러 문집과 중인 출신들의 열전인 《호산회사(壺山外史)》를 남겼다. 조희룡은 헌종으로부터 금강산을 시와 그림으로 묘사하라는 명을 받기도 했으며, 궁궐 내에 새로 지은 누각에 ‘문향실(聞香室)’이라는 현판을 쓸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길상여의"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기를 바라다'라는 뜻이다. 김정희도 '길상여의관(吉祥如意館)'이라는 인장을 사용했다.
사용자: 조희룡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여항 화가로서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 등이 있다. 조희룡은 추사 문하의 제일인자로서 매화 그림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묵장의 영수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여항 문인들 사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해외난묵(海外蘭墨)》, 《일석산방소고(一石山房小稿)》 등의 여러 문집과 중인 출신들의 열전인 《호산회사(壺山外史)》를 남겼다. 조희룡은 헌종으로부터 금강산을 시와 그림으로 묘사하라는 명을 받기도 했으며, 궁궐 내에 새로 지은 누각에 ‘문향실(聞香室)’이라는 현판을 쓸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길상여의"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기를 바라다'라는 뜻이다. 김정희도 '길상여의관(吉祥如意館)'이라는 인장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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