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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석제 '보담재인' 인장

石製 寶覃齋印 印章

  • 유물번호

    창덕7814
  • 연대

  • 재질

    석인
  • 크기(cm)

    가로: 6.3, 세로: 6.3, 높이 2.6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석제 '보담재인' 인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김정희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 말기 대학자이자 서화가로 자는 원춘(元春)이고 호는 추사(秋史) · 완당(阮堂) 등 500여 개에 이른다. 소년시절 박제가(朴齊家, 1750~1805)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24세 때인 1809년에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는 부친 김노경을 따라 연경에 체류하면서 옹방강 · 완원(阮元, 1764~1849) 등과 교유했다. 청조의 고증학과 금석학에 뿌리를 둔 김정희의 학예관은 조선 말기의 문예 사조를 바꿔놓을 만큼 영향력이 컸는데, 왕실 · 사대부에서부터 중인 계층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다. 국왕인 헌종 또한 김정희의 글씨를 매우 좋아하여 낙선재 안의 현판 대부분을 그의 글씨로 달았다. 전각에도 탁월한 감식안을 가졌던 김정희는 청나라의 전각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고인(古印)의 인보를 통해 진(秦) · 한(漢)대의 전각을 연구했다. 그의 다양한 별호를 새긴 인장을 서화의 낙관에 두루 사용했으며, 현재 수십여 점의 인장과 여러 종의 인보가 전한다.

“보담재인”은 ‘담계(覃溪)를 보배롭게 여기는 서재’를 의미한다. 김정희가 평소 존경하던 중국 청(淸) 학자 옹방강의 당호 ‘담계(覃溪)를 따서 지은 당호이다. 박혜백(朴惠百) 구장(舊藏) 《완당인보(阮堂印譜)》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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