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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석제 '묵연당' 인장

石製 墨緣堂 印章

  • 유물번호

    창덕7851
  • 연대

  • 재질

    석인
  • 크기(cm)

    가로: 2.2, 세로: 3.8, 높이: 3.6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석제 '묵연당' 인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신위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신위(申緯, 1769~1845)는 시인이자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겸비했던 인물로 자는 한수(寒叟), 호는 자하(紫霞) · 경수당(警修堂)이다. 1799년 문과에 급제해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었으며, 대사간 · 이조참판 ·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812년 진주겸주청사(陳奏兼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에 갔을 때 김정희의 소개로 옹방강과 교유를 가졌고, 인장에도 그와 관련된 글귀를 새겨서 사용했다. 전각에 대한 지식과 감식안이 뛰어났던 신위는 헌종의 명을 받아 조두순(趙斗淳, 1796~1870)과 함께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의 편집을 맡았다고 전하며, 역대 서화가들의 인장을 모아 찍은 《고금인장급화각인보(古今印章及華刻印譜)》[정육(鄭堉), 1818년]에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신위의 아들들 또한 전각에 취미가 있었는데, 특히 장남 신명준(申命準, 1803~1842)은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전래된 인장들을 모각했다고 한다.

"묵연당"은 '먹으로 맺은 인연'을 의미한다. 신위의 당호(堂號)이기도 하다. 《고금인장급화각인보》의 '공후인사(公厚印史)'라는 글씨 부분과 신위의 시권(詩卷)[간송미술관 소장]에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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