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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
효종 추상존호 금보
孝宗 追上尊號 金寶
-
유물번호
종묘13613 -
연대
1900년(광무4) -
재질
금속 -
크기(cm)
세로: 9.8cm, 가로: 9.8cm, 높이: 7.4cm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효종 추상존호 금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광무 4년(1900)
보문내용: 欽天達道 光毅弘烈 宣文章武 神聖顯仁 明義正德 大王之寶
어보에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등을 새겼는데 추가로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또 묘호(廟號)를 새길 경우에는 맨 앞에 새겼다.
광무 4년(1900)에 효종에게 '흠천달도 광의홍렬(欽天達道 光毅弘烈)'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어보이다. '선문장무 신성현인(宣文章武 神聖顯仁)'은 현종 원년(1659)에 올린 시호이고, '명의정덕(明義正德)'은 영조 16년(1740)에 올린 시호이다. 효종(1619~1659)은 조선 제17대 왕으로 이름은 호(淏), 자는 정연(靜淵), 호는 죽오(竹梧)이다. 인조(仁祖)의 둘째 아들로서 어머니는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이며 비(妃)는 장유(張維)의 딸인 인선왕후(仁宣王后)이고, 재위기간은 1649년~1659년이다. 인조 4년(1626) 봉림대군(鳳林大君)에 봉해졌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이듬해에 형인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잡혀있다가 돌아왔다. 인조 23년 (1645) 소현세자가 병사한 뒤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1649년에 즉위하였다.
보문내용: 欽天達道 光毅弘烈 宣文章武 神聖顯仁 明義正德 大王之寶
어보에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등을 새겼는데 추가로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또 묘호(廟號)를 새길 경우에는 맨 앞에 새겼다.
광무 4년(1900)에 효종에게 '흠천달도 광의홍렬(欽天達道 光毅弘烈)'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어보이다. '선문장무 신성현인(宣文章武 神聖顯仁)'은 현종 원년(1659)에 올린 시호이고, '명의정덕(明義正德)'은 영조 16년(1740)에 올린 시호이다. 효종(1619~1659)은 조선 제17대 왕으로 이름은 호(淏), 자는 정연(靜淵), 호는 죽오(竹梧)이다. 인조(仁祖)의 둘째 아들로서 어머니는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이며 비(妃)는 장유(張維)의 딸인 인선왕후(仁宣王后)이고, 재위기간은 1649년~1659년이다. 인조 4년(1626) 봉림대군(鳳林大君)에 봉해졌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이듬해에 형인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잡혀있다가 돌아왔다. 인조 23년 (1645) 소현세자가 병사한 뒤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1649년에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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