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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영친왕비 홍원삼

英親王妃紅圓衫

  • 유물번호

    궁중43
  • 연대

    20세기
  • 재질

    비단
  • 크기(cm)

    앞 길이: 114cm, 뒷 길이: 150cm, 화장: 132cm, 진동: 24cm, 뒤품: 45cm, 고대: 16cm, 소매 너비: 71cm, 수구: 19cm
  • 지정현황

    국가민속문화유산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영친왕비 홍원삼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여성들이 국가의 크고 작은 의식이 있을 때 입었던 예복이다. 서민들은 혼례 때에 원삼을 입었다. 깃 모양이 둥근[원(圓)] 옷[삼(衫)]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양쪽 깃이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고, 옷자락의 양 옆이 트였으며 앞자락이 뒷자락보다 짧다. 소매에 색동과 한삼(汗衫)을 달아 장식한다. 조선 후기 왕비의 원삼은 없었고 왕세자빈은 녹색 원삼을 착용하였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황후가 황색, 왕비가 홍색, 왕세자빈이나 빈(嬪)은 자적색, 왕녀 · 대군부인 · 군부인 등이 녹색의 원삼을 착용하였다. 빈 이하는 원삼에 봉흉배(鳳胸背)를 달았다. 전행웃치마 · 대란치마 · 봉대(鳳帶) · 혜(鞋)와 함께 착용한다. 빈과 대군부인 이하는 대례복으로 원삼에 하피를 착용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봉대 대신 대대와 품대를 사용하고 전행웃치마와 패옥(佩玉) · 수(綬) · 홀(笏) 등을 갖춘다.

이 원삼은 대홍색(大紅色) 운봉문직금단(雲鳳紋織金緞)으로 제작된 동절기용 원삼으로 착용했던 흔적이 있다. 양어깨와 소매의 하단, 앞뒷길 하단, 뒷면 허리에는 운봉문이 편금사(片金絲)로 직금되어 있다. 화장은 긴 편이고 소매 끝에는 황색, 남색, 백색의 한삼이 달려있는데 큼직한 모란과 보상화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직금단을 붙였다. 등솔의 솔기 방향은 겉감과 안감 모두 오른쪽을 향하였고 솔기선을 함께 홍색 실로 7cm 간격으로 떠서 고정시켜 주었다. 양 옆은 진동점에서 2.5cm 내려온 지점부터 트였으며 뒷자락이 앞자락보다 36cm 길다. 가슴 · 등 · 양어깨에는 색사와 금사로 수를 놓은 오조룡보가 달려있는데 지름은 18.5cm이며 뒤는 홍색 숙고사로 댔다. 보가 달린 위치는 앞에는 깃 아래에, 어깨는 고대에서 0.7cm 떨어진 곳에, 뒤는 뒷고대중심점에서 16.5cm 내려간 지점에 달았다. 견사를 땋아서 만든 너비 3cm, 길이 17cm의 보 끈이 입어서 오른쪽 깃 끝에서 10cm 내려온 곳에 달려있다. 길의 옆선과 도련은 약간 곡선을 이루고 있다. 깃은 뒷고대를 중심으로 연결하여 좌 · 우 맞깃형태로 만들었으며 가장자리는 재봉틀로 눌러 박았다. 안깃은 각이 지게 만들었으며 공그르기로 고정하였다. 백색 수자호로문 숙고사로 동정을 달았다. 수구에는 위에서 19cm 내려간 곳에 홍색 박쥐매듭을 달았다. 원삼의 안은 원형의 "수(壽)"자 무늬 둘레에 박쥐가 날고 있는 황색 수복문단(壽福紋緞)을 사용하였고 안단은 동일한 옷감이나 색상만 다른 7cm 너비의 남색 편복문단으로 대었다. 겉과 동일한 옷감으로 대대고리를 만들어 겨드랑이에 달았다. 1.5cm 너비의 끈을 만들어 접어서 7.5cm 부분을 고정한 후 몸판의 겨드랑이에 끼워서 다시 고정하였다. 남은 끈의 앞은 38.5cm, 뒤쪽은 35cm 길이로 남겼다. 깃이 맞닿는 부분의 양쪽에는 무엇인가를 달았던 흔적이 있는데 여밈의 용도로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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