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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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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 적의

의상

영친왕비 적의

英親王妃翟衣

  • 유물번호

    궁중31
  • 연대

    1922년
  • 재질

    비단에 자수
  • 크기(cm)

    뒷 길이: 143.8cm, 화장: 104.6cm, 진동: 24.2cm, 뒤품: 53cm, 고대: 17cm, 소매 너비: 70cm, 수구: 19.5cm, 선 너비: 9cm
  • 지정현황

    국가민속문화유산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영친왕비 적의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적의(翟衣) 차림을 할 때 가장 겉에 입는 포(袍) 형태의 옷이다. 꿩무늬[적문(翟紋)]를 일정한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넣어 직조한 천으로 만든 옷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시대 왕비나 왕세자빈은 무문(無紋)이나 화문(花紋)의 대홍색(大紅色) 적의와 흑색 적의를 각각 사용했고, 대한제국 황후와 황태자비는 심청색(深靑色) 적의를 착용했다. 황후와 황태자비, 왕비와 왕세자빈의 적의에는 양 어깨 · 가슴 · 등의 4곳에 둥근 용보(龍補)를 단다. 왕세손빈은 방형(方形)의 흉배를 2개만 단다. 용보에 수놓인 용의 발톱수는 황후 · 황태자비적의 착용 모습 · 왕비가 5개, 왕세자빈이 4개, 왕세손빈이 3개이다. 적의(翟衣) · 중단(中單) · 전행웃치마 · 대대(大帶) · 수(綬) · 폐슬(蔽膝) · 패옥(佩玉) · 옥대(玉帶) · 하피(霞帔) · 말(襪) · 석(舃) · 규(圭)가 일습이다.

이 적의는 영친왕비가 1922년 순종을 알현할 때 착용했던 대례복이다. 심청색의 문단(紋緞)을 사용하여 홑으로 지었는데 138쌍의 꿩과 오얏꽃 형태의 소륜화(小輪花) 168개의 무늬가 9등으로 짜여져있다. 깃 · 도련 · 섶과 수구에는 홍색 운봉문직금단(雲鳳紋織金緞)으로 선을 둘렀는데 연금사(撚金絲)로 직금하였다. 경 · 위사 모두 꼬임이 없는 무연(無撚)의 생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제직한 후 정련한 직물로 명주에 비해 톡톡하다. 각종 《의대목록》에는 ‘우이즁’으로 기록되어 있다. 적의의 앞, 뒤, 그리고 어깨에는 오색색사와 금사로 수를 놓은 너비 17.5cm의 오조룡보가 달려있는데, 어깨에는 고대 바로 옆에, 뒤는 뒷고대중심점에서 6.5cm 내려온 곳에 달았다. 소매가 넓고 수구에는 19.5cm 아래에 홍색 박쥐매듭를 달았다. 겉고름은 너비 8.3cm에 긴 고름은 93cm, 짧은 고름은 83cm이고 안고름은 각각 93cm, 86cm이다. 겨드랑이 부분에는 너비 2cm, 총길이 81cm의 대대고리를 달았는데 37cm되는 지점에서 반으로 접어 8.5cm 되는 부분에 바느질하여 고리를 만든 후 바느질한 부분을 겨드랑이 밑에 두고 박음질로 고정시켰다. 심청색 공단으로 만든 크기 77×11cm의 등바대는 뒷고대를 중심으로 공그르기로 고정하였고, 진동 주위에는 남색 오호로단(五葫蘆緞)으로 만든 20×20cm의 곁바대를 공그르기로 달아주었다. 뒤쪽에는 쌍밀이기법으로 만든 2cm 길이의 고리가 달려 있는데 양쪽 고대점에 1개씩, 뒷고대중심점에서 18.5cm 내려온 보 위에 1개, 이를 중심으로 좌 · 우 18cm 간격으로 1개씩, 그리고 등솔선 끝에 1개로 총6개를 볼 수 있다. 등솔은 재봉틀로 박아 시접을 오른쪽으로 향하게 처리하였고 옆선 또한 재봉틀을 사용하여 통솔로 마무리했다. 적의의 제작에는 재봉틀과 손바느질이 함께 사용되었다. 광무 원년(1897) 제정된 《대한예전》에 황태자비의 적의는 심청색에 꿩무늬[적문(翟文)] 138쌍(9등)과 소륜화를 짜 넣고 홍색깃[홍색령(紅色領)]에는 운봉문을 직금(織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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