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감란록
勘亂錄
※해제
『감란록(勘亂錄)』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의 전말에 관한 자료를 엮어 간행한 책이다. 영조는 난이 평정된 이후인 1729년에 정석삼(鄭錫三), 이광좌(李光佐) 등의 의견에 따라 당시 좌의정인 조태억(趙泰億)에게 이 책의 편찬을 주관하게 하였고, 이에 송인명(宋寅明, 1689~1746)과 박사수(朴師洙, 1686~1739) 등이 실무를 맡아 편집하고 이 해에 간행하게 되었다.
신임옥사(辛壬獄事)를 거치고 즉위한 영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통성 확립이었다. 영조로서는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정치 세력들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한편으로 『감란록』과 같은 ‘국가의리서’를 편찬하여 새로운 국가의리를 확정함으로써 정통성을 강화하고 정국을 주도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책의 첫머리에는 영조가 직접 쓴 어제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영조는 『논어』의 “군자는 두루 관계하며 편당짓지 않으나, 소인은 편당을 지으며 두루 관계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와 “진실로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면 못하는 일이 없어진다[苟患失之, 無所不至矣].”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현재 붕당 정치의 문제점을 상기시키고 추후의 재발을 막고자 이 책을 편찬한다는 간행 목적을 서술하였다. 이는 1729년(屠維作愕-己酉) 10월 상순[上澣]에 지은 것으로, 승정원 도승지인 조현명(趙顯命, 1690~1725)이 기록하였다.
이 책은 총 6권 4책으로 편찬되었으나, 본관 소장본은 권1,2인 2권 1책의 영본(零本)이다. 권1은 무신년(1728년) 3월 14일[甲子] 최규서(崔奎瑞)의 급변과 관련하여 영의정 이광좌 등을 희정당에서 인견한 내용을 시작으로 하여, 24일[甲戌] 감호 제군사(監護諸軍使) 윤순(尹淳)이 사폐(辭陛)하고 입대(入對)한 내용까지 수록하고 있다. 권2는 25일[乙亥] 전라감사 정사효(鄭思孝)를 잡아들인 내용부터 4월 6일[丙戌]의 윤흥국(尹興國)과 이일(李溢)을 신문한 내용까지 수록하고 있다. 권2의 시작과 끝의 몇 면은 탈락되어 있다. 이 내용들은 대부분 『영조실록』의 같은 날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무신란 진압 후에 영조와 재조 소론은 무신란의 주도 세력들과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단절시켜야 할 필요성을 감지하였으며, 이러한 정치적 목적에 입각해서 무신란 진압의 기록인 『감란록』을 편찬하게 된 것이다. 이인좌의 난의 전개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였으며, 관련 죄인들의 초사(招辭)가 초록되어 있어, 난의 원인과 전말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영조와 재조 소론의 정치적 이해는 수렴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름 합의된 정치적 의리와 명분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소장기호: 奎5150-v.1-4)과 국립중앙도서관(소장기호: 한古朝56-나8)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본관 소장본은 비록 1책의 영본이며 일부 탈락면이 있으나, 위 기관 소장본들이 권1, 2가 2책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과는 책차가 상이하여, 다양한 판본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신임사화의 주동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왕이 내린 훈유문인 본관 소장 서적 『어제대훈(御製大訓)』(고궁 699)과 함께 살펴볼 만하다.
※목차
- 御製序
- 권1
-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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