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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덕수궁 덕홍전(德弘殿)을 장식한 ‘소나무와 학 그림’

덕수궁 덕홍전(德弘殿)을 장식한 ‘소나무와 학 그림’

국립고궁박물관은 일월오봉도, 모란도 병풍 등 궁궐을 장엄하는 궁중 장식화를 비롯하여 궁궐에서 전래된 여러 가지 그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에서는 덕수궁 덕홍전(德弘殿) 내부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풍의 그림 송학도(松鶴圖)와 송죽도(松竹圖)를 소개합니다. 

송학도, 송죽도

송학도는 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한 마리의 학이 소나무를 딛거나 날개를 펼쳐 비상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모두 네 점으로 크기가 똑같습니다(도1~4). 송죽도는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와 소나무, 대나무 몇 그루를 묘사하였는데, 송학도에 비해 가로 크기가 2배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입니다(도5). 이 다섯 점의 그림은 소재와 금니 바탕 등 채색 전반적인 필치가 동일하여 한 명의 작가가 세트로 그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朝鮮と建築』 1925년 12월호에 게재된 한 장의 흑백사진이 주목됩니다(도6). 사진의 제목은 ‘德壽宮 石造殿 應接間’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덕홍전 실내의 커튼 박스 봉황 장식, 기둥, 창방 등의 목구조와 비교해 보면(도8), 흑백사진 속 장소를 덕홍전으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서양식 테이블과 의자 등으로 꾸며진 실내를 찍은 흑백사진에서 송학도 한 점이 벽에 걸려 있는데, 바로 ‘도1의 송학도’와 똑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도1=도7).   

덕수궁 덕홍전
이 다섯 점의 그림(도1~5) 이력을 이전 유물 관리대장을 통해 살펴보면, 1986년 10월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관되었고, 1994년 창덕궁에서 궁중유물전시관(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신)으로 다시 이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현재 ‘창덕’이라는 소장품 코드가 부여 되었으나 본래는 덕수궁에 소장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1914년~1915년 작성된 『덕수궁원안(德壽宮原案)』(국가기록원 소장, 관리번호 CB0009636)의 덕홍전 건물조사 보고의 비고란에 ‘壁? 五’라는 기록과 붉은 펜으로 ‘¥2072.91 請原人 天草神來’으로 추정되는 흘겨 쓴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도9). 이는 뒤에 언급할 벽화를 그린 화가로 전해지는 아마쿠라 신라이(天草神來)의 이름과 벽화의 금액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덕홍전 실측 도면에서도 ‘壁? 五’라고 수기로 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도10). 벽화 다섯 점에 대한 크기나 내용 등 자세한 부가 설명은 찾기 어렵지만 『朝鮮と建築』 속 흑백사진에서도 확인 한 송학도를 비롯한 우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다섯 점의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전하는 그림은 액자 형태이지만, 크기가 상당하고 벽에 걸어두거나 부착하였기에 벽화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덕홍전 건물조사보고

덕홍전 도면

그러면 이 다섯 점의 그림은 누가 그린 것일까요? 전반적인 화풍 상 우리나라 전통적인 방식의 송학도가 아닌 일본 화풍이 가미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림 속에서 인장 등 화가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을 수 없으나 <매일신보> 기사에 의하면 아마쿠사 신라이(天草神來, 1872~1917년)의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덕홍전(德弘殿)의 준공(竣工) 
 
창덕궁 이왕 전하의 알현실(謁見室)이 되는 창덕궁 인정전을 방(倣)하여 덕수궁 내에 건축 중인 덕홍전은 이미 낙성(落成)하여 6일 밤부터 점등(点燈)하였는데 상문(詳聞)한즉 공사비 6만여원을 요하여 실내장식과 여(如)함도 극히 화려한데, 대벽화는 화백 천초신래자(天草神來子)의 필(筆)로 성(成)한 송도(松濤)의 필치(筆緻)가 용건(勇健)하여 근래의 걸작(傑作)라더라. 

<每日申報> 1912. 9. 10.



일본 화가 아마쿠사 신라이(天草神來, 1872~1917년)는 도쿄미술학교 일본화과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지냈으며, 1902년경 방한하여 1915년까지 남산 인근의 화실을 차렸던 인물입니다. 일본 화가 히요시 마모루(日吉守)는 아마쿠사 신라이가 그린 덕수궁 내 알현의 방에 있는 송학 그림의 벽화를 역작으로 생각한다고 회고하였습니다. 더불어 1912년 3월 무렵의 작품으로 금니극채색(金泥極彩色)으로 된 현란한 것이지만, 선이 적은 탓인지 박력은 없는 것 같다고 그림을 보고 느낀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료를 토대로 우리 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다섯 점의 그림이 아마쿠사 신라이가 그린 덕홍전을 장식했던 벽화로 연결지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의 실내 공간에 벽화를 그리는 전통이 드물었지만, 1900년대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재건하면서 서양식과 일본식이 절충된 양식들이 혼재하게 됩니다.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 실내를 장식한 부벽화처럼, 1912년 고종 황제의 접견실로 쓰였던 덕수궁 덕홍전의 송학도와 송죽도 역시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서 근대기를 거치면서 변화된 양상의 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 참고
강민기, 「근대 한일화가들의 교우-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27, 2014.
히요시 마모루, 이중희 역, 「조선미술계의 회고」, 『한국근현대미술사학』3, 1996.
덕수궁관리소, 『덕수궁원안』 용역보고서, 2017.
이왕직, 『德壽宮原案』, 1914~1915, 국가기록원 소장, 관리번호 CB0009636
『朝鮮と建築』, 조선건축학회, 1925년 12월호
<每日申報> 1912. 9. 10.


안보라(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