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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내 마음 같은 ‘깊은 근심’이었을까.

내 마음 같은 ‘깊은 근심’이었을까.

 조선에서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자(子)’, ‘묘(卯)’, ‘오(午)’, ‘유(酉)’ 간지가 포함되는 해에 보았던 ‘식년시(式年試)’를 보면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殿試)’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비유하면 1차, 2차, 3차 시험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복시에만 합격하여도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복시에 합격한 인원을 대상으로 임금 앞에서 성적순을 결정하는 시험을 치르는데, 이를 전시라고 했습니다. 이 전시에서 1등한 사람을 ‘장원급제’라고 부르게 됩니다. 

전시는 ‘모화관’이나 ‘경회루’에서도 치렀지만 창덕궁 후원의 ‘영화당(映畵堂)’ 앞의 춘당대(春塘臺)에서도 치렀습니다. 왕 앞에서 치르는 만큼 시험에 임하는 선비들의 마음도 특별했을 것입니다. 춘당대에서는 나라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초시, 복시, 전시의 과정 없이 단 한 번에 과거를 보는 ‘춘당대시(春塘臺試)’도 있었는데요. 그만큼 영화당과 춘당대는 관직에 진출하려는 선비들에게는 꿈과 희망, 또는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공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전시를 위해 임금이 머물던 영화당에는 선조,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의 글씨가 담긴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중에서 조선 제 14대 임금이었던 선조가 쓴 글씨를 새긴 현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판


                    遠客座長夜      나그네는 긴 밤을 앉아  
                    雨聲孤寺秋      가을날 절에서 외로운 빗소리를 듣네
                    請量東海水      동쪽 바다 물의 깊이를 재어 보게나
                    看取淺深水      내 마음의 근심보다 깊은지 얕은지.



이 시는 당나라 때 시를 잘 쓰기로 유명했던 이군옥(생몰년도 미상)의 <우야정장관雨夜呈長官>이라는 16행시의 처음 4행입니다. ‘동해 바다의 깊이는 잴 수 있어도 내 마음의 근심은 잴 수 없다’는 말로 깊은 근심을 느끼게 합니다. 결실된 부분도 있지만 4개의 현판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선 바닥판재(알판)의 바탕은 흰 색입니다. 글자는 양각에 검은색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바닥판재의 주변에는 테두리목(변)을 대었는데, 좌우와 상하에 돌출된 장식이 없는 ‘모판(木盤)’ 형태의 현판입니다. 테두리목은 철못으로 고정하였고, 가장자리는 물결 형태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테두리목에는 꽃 문양 등을 화려하게 채색하였지만 박락이 심한 상태입니다.

이 현판들은 다른 현판들에 비해 특별한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크기도 평범하고, 제작 기법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판을 건 의도가 궁금한데요. 왜 ‘먼 길 떠나온 나그네의 깊은 근심’을 이야기하는 시를 현판으로 만들어 과거시험을 치르던 장소에 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짓궂은 상상을 해보면 조금은 특별하고 재밌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그것도 임금 앞에서 ‘장원 급제’의 영광을 꿈꾸었을 까닭에 이 현판들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모인 선비들의 초조하고 떨리는 근심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선비들을 바라보았을 임금은 자신의 치세를 이끌어갈 인재를 찾기 위해 골똘히 고민했을 것도 같습니다. 지금 시대로 바라보면 더 넓은 세상으로 비상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회 준비생들의 깊은 근심 같기도 합니다. 

  ‘간취천심수’. 내 마음 같은 옛 어른의 시 한 구절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심명보(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