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통합예약
소장품 소장품 이야기 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사라진 태조의 얼굴 - 태조어진

사라진 태조의 얼굴 - 태조어진

국립고궁박물관에는 그림의 일부가 불에 타버린 왕의 초상화(어진) 몇 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소개해 드릴 소장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왼쪽 절반가량이 소실된 이 어진의 주인공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재위 1392-1398) 이성계(李成桂)입니다. 남아있는 부분으로 추정을 해 보면 그림 속 태조는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고 화려하게 장식된 어좌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앉아 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이므로 불에 타서 사라진 부분은 남아있는 그림을 대칭시켜 생각해 보면 전체 모습을 추정할 수 있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얼굴은 손상된 부분이 많아 왼쪽 눈과 귀 정도만 겨우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윗부분에는 ‘표제(標題)’라고 하는 붉은색 비단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태조이고 1900년에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1900년을 기준으로 태조는 이미 오백여년 전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 모습을 직접 보고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태조의 어진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방법을 썼습니다.

조선시대에 왕의 어진을 그리는 일은 중요한 행사였기 때문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의궤(儀軌)’를 남기도록 해서 그 진행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900년에 태조어진을 그렸던 일 역시 의궤가 남아 있습니다. 이 의궤를 보면 이 태조어진은 영흥의 준원전이라는 곳에 모셔져 있던 태조어진을 가지고 와서 옮겨 그렸다고 합니다. 영흥의 준원전은 전주의 경기전과 마찬가지로 태조의 어진을 모셔놓았던 공간입니다. 준원전에 있는 태조어진을 확인해 보면 이 불에 탄 태조어진의 모습도 되살려 볼 수 있을 테지만, 영흥은 북한 지역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온전하게 전해져 오는 태조어진으로 전주 경기전에 모셔져 있던 것이 있습니다. 이것과 비교를 해보면 불에 탄 태조어진의 모습을 복원해 보는데 도움이 됩니다. 언뜻 보기에도 앉음새나 어좌의 형태, 배경 등이 거의 같아 보입니다. 다만, 입고 있는 옷의 색은 전혀 다릅니다. 얼굴은 어땠을까요?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과 같은 모습이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1913년에 준원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요즘 사진에 비하면 화질이 많이 떨어지는 흐릿한 흑백 사진이지만 준원전에 모셔져 있던 태조어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이 준원전 사진을 통해서 불에 탄 태조어진도 이런 모습으로 그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 속 태조어진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전주 경기전의 것은 머리카락이나 수염이 희끗희끗해진 노년의 모습이지만, 사진 속 태조는 검은 수염을 하고 있고, 얼굴 모습도 더 젊어 보입니다. 아직 흰 머리가 나기 전인 장년기의 모습을 그렸던 모양입니다. 불에 탄 태조어진도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왕이 입는 곤룡포 하면 붉은색을 먼저 떠올리지만 태조가 왕으로 있던 조선 초기에는 푸른색 곤룡포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푸른색 곤룡포를 입은 태조의 모습도 있고, 후대에 태조의 어진을 다시 그리면서 붉은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으로 바꾸어 그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경기전 태조어진은 노년의 얼굴에 푸른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고, 불에 탄 태조어진은 장년의 얼굴에 붉은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입니다. 태조어진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두 가지 모습의 태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도 1. <태조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도 2. <태조어진>의 얼굴 부분

도 3. 경기전 <태조어진>, 어진박물관 소장 도 4. 1913년 촬영 준원전 <태조어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 5. 경기전 <태조어진>의 얼굴 부분 도 6. 준원전 <태조어진>의 얼굴 부분


신재근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