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한 사람을 위한 입학식, 〈왕세자입학도〉
<왕세자입학도>는 2016년 10월까지 방영된 TV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 속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효명세자의 입학식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효명세자는 1817년 3월 11일, 아홉 살의 나이로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치르게 됩니다. 당시 왕세자의 입학식이란 것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날 행사의 생생한 모습이 여섯 장의 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궁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효명세자가 창덕궁을 나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맨 앞의 의장 행렬부터 왕세자를 호위하는 관리들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사였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위쪽에 보이는 가마가 바로 왕세자의 가마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효명세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조선시대에는 왕과 관련된 행사 그림을 그릴 때 왕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왕을 상징하는 물건이나 주변 상황으로 왕이 그 자리에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관례에 따라 왕세자의 모습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성균관에 도착한 효명세자는 먼저 대성전에 모셔진 공자와 여러 성인들의 신위에 술잔을 올리며 예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업 장소인 명륜당 문 앞에서 스승에게 수업을 청하게 됩니다. 허락을 받은 효명세자는 명륜당 안으로 들어가 감사의 뜻으로 스승에게 예물을 드립니다. 왕세자가 가르침을 구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스승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그림에 이르면 효명세자가 스승으로부터 수업을 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균관 명륜당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당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자리하고 있고 건물 안쪽으로는 평소 세자의 교육을 담당했던 관리들이 몸을 낮춰 엎드리듯이 앉아 있습니다. 관리들 앞쪽으로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이 세자의 스승입니다. 스승의 책상 위에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 권의 책이 바닥에 펼쳐져 있습니다. 왕세자는 장차 한 나라의 국왕이 될 존귀한 신분이었지만, 입학식에서만큼은 스승과 제자의 예에 따라 책상 없이 바닥에 책을 놓고 수업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 관리와 유생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세자를 위한 첫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날의 수업 교재는 「소학(小學)」이었고, 수업 중에는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고 합니다.
세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까?"
스승이 대답하였습니다.
"저하(邸下)의 이 물으심은 참으로 종묘 사직과 신민의 복입니다. 세자께서 어린 나이에 입학하여 이미 성인이 되기를 스스로 기약하는 뜻이 있으시니, 참으로 이 마음만 잘 미루어 확충하신다면 요(堯)임금도 될 수 있고 순(舜)임금도 될 수 있는데 지금부터가 그 시작입니다."
수업을 마친 효명세자는 궁궐로 돌아와 여러 관리들로부터 축하를 받게 되고 이것으로 모든 입학식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게 될 왕세자가 스승 앞에서 제자의 예에 따라 입학식을 치르는 모습에는 학문과 인덕을 두루 갖춘 어진 국왕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있었을 것입니다. 아홉 살의 나이로 스승에게 성인이 되는 길을 물었던 효명세자, 그의 입학식은 한 사람을 위한 입학식이기 이전에 나라 전체, 백성 모두를 위한 입학식이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왕세자입학도>에는 여섯 장의 그림에 이어서 이날 행사에 참여했던 관리 13명의 축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축하 시를 남긴 13명은 모두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관리들이며 왕세자를 도와 입학식 행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입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왕세자의 입학식을 성대하게 치러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도 상당히 영예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참석자들 수만큼 그림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갖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왕세자입학도>에도 참석한 관리들의 이름이 축하 시의 형식으로 남겨져 있어서 아마도 참석자들이 여러 부를 제작하여 나눠 갖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효명세자의 입학식을 그린 <왕세자입학도>는 국립고궁박물관 이외에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경남대학교 박물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신재근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