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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속 왕실 유물 이야기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의 기록: 잡지와 신문, 그리고 황제의 어새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의 기록: 잡지와 신문, 그리고 황제의 어새

1907년 7월은 대한제국을 둘러싼 정세가 복잡하게 전개되어 갔던 시기였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만 상황에서,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07년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므로, 이에 특사를 파견하여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불법적으로 침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계획이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1907년 7월의 헤이그 특사 파견과 관련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 ‘황제어새’(보물)라는 인장은 여느 어보나 국새와는 다릅니다. 다른 어보나 국새는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 수록되어 존재가 알려져 있지만, ‘황제어새’는 그 존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어새가 한 변이 9~12cm 규모였던 것과 달리 ‘황제어새’는 한 변의 길이가 5.3cm인 소형으로, 함의 형식 또한 인주함 일체형으로 제작되어 다른 어보와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황제어새’를 이처럼 독특하게 제작해야 했던 이유는 그 특별한 사용목적에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고종황제는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을 특사로 임명하여 헤이그에 파견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로 하여금 3인의 특사를 측면에서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특사들과 헐버트에게 발급된 위임장이며 각국 국가원수에게 고종황제의 명의로 발송된 친서 등에 날인된 것이 다름아닌 이 ‘황제어새’였습니다. 그러니 이 인장은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의 위기 상황에서 고종이 힘썼던 외교활동의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고종의 밀지를 받은 특사들의 헤이그 활동에 대한 기록도 유물 속에 담겨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프랑스 주간지 『일뤼스트라시옹(L’illustration)』 1907년 8월호에는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소식이 실려 있고, 여기에 일본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자행하고 있는지 다룬 기사를 이어서 실었습니다. 

프랑스의 주간지가 대한제국의 상황에 주목하여 기사를 싣게 된 까닭은 열강의 거절로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좌절된 헤이그 특사 3인이 장외에서 언론인 서클을 중심으로 한국의 입장을 호소하는 활동을 펼친 것과 관계됩니다. 특사 이위종은 7월 9일 세계 언론인이 모인 신문기자단 국제협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과거 조약과 공법을 저버리고 을사늑약을 강압하였다는 것을 호소하여 세계 언론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프랑스 주간지


헤이그 특사의 활동에 관한 기록은 한국 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전 평리원 검사 이준씨가 지금 만국평화회의에 한국파견원으로 간 일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인데, 어제 동경에서 온 전보에 의하면 이준씨가 충분(忠憤) 지기(志氣)를 이기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자결하여 만국 사신의 앞에 뜨거운 피를 한 번 뿌려 만국을 놀라게 하였다더라” (『대한매일신보』 1907.7.19. 잡보)와 같이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도 있었지만, 국권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고종의 밀명을 받들고 세계인에게 호소하였던 특사의 활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대한매일신보


그러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를 앞두고 영?미를 비롯한 열강이 일본의 이른바 ‘한국 보호국화’를 승인하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러시아마저 외몽고에서의 권리를 대가로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각국은 고종이 파견한 특사의 외침에 냉담한 반응만을 보이게 되었고, 이준 열사는 헤이그 땅에서 울분 속에 숨을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군비경쟁과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의 이목이 쏠린 헤이그에서 대한제국 특사의 호소가 일으킨 큰 반향도 남겨진 기록을 계기로 다시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박경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