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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주름과 다림질

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직물은 실을 짜거나 묶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여 만들기 때문에 부드럽고 유연하며 형태를 자유로이 바꿀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나 착용자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쉽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예는 주름입니다.

주름은 모양새에 따라, 접힘(fold),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서 접어박은 옷주름(pleat), 울룩불룩한 구김(crumple), 주름선과 구김살(wrinkle), 자잘하고 가는 주름선(crease) 등 약간씩 다른 느낌으로 표현됩니다. 접힘과 옷주름은 주로 의복구성의 일부이며 장식적 기능도 가집니다. 그 외는 사용하면서 혹은 보관하는 동안 외부로부터의 힘을 받아서 생기는 주름입니다.


다리미

주름이나 구김을 펴는 것은 의복관리의 마무리 작업으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다림질입니다. 금속다리미는 중국에서 기원전 1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하며, 17세기 이후 '숯불 다리미'가 영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숯불 다리미’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둥근 밑바닥에 숯불이 담긴 다리미를 두 명이 팽팽히 잡아당긴 옷감 위에 대고 다리는 방식입니다. 옛 여성들은 가장의 외출 전날 옷을 미리 꺼내어 빨랫줄에 널어 이슬에 녹여서 불 피워 다리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요즘은 미국에서 발명된 전기다리미가 사용되고 있는데, 높은 온도로 구김을 펴는 과정은 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습 기능도 있어서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오래된 직물유물의 주름을 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름을 펴면 가려져있던 디자인이나 문양이 드러나면서 유물조사나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주름은 섬유가 굽혀진 현상인데, 이것이 차차 날카롭게 꺾이거나 섬유가 끊기는 상태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주름을 제거합니다. 게다가 주름은 먼지와 오염물이 모이고, 벌레가 숨어들기에 좋은 장소가 되기 때문에 펴주어야 합니다. 

 직물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주름을 제거하는 방식은 수분을 더해주는 것, 즉 가습(加濕, humidification)입니다. 가습으로 수분을 받아들인 섬유는 형태를 바꾸기 쉬워집니다. 그리고 수분이 증발하기 전에 형태를 잡아준다면, 수분이 증발한 뒤에는 잡아준 모양으로 고정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가습기나 분무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수분흡수막(종이나 천)과 중간막(고어텍스Goretex® 등)을 유물에 닿도록 하여 간접적으로 수분을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 공기 중 습도를 서서히 높이는 방법도 사용됩니다. 중요한 점은 미세한 크기의 물입자를 적절한 온도와 양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물유물의 보존처리에 주름을 펴는데 편리한 다리미를 왜 사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다림질을 하게 되면 뜨거운 온도와 압력, 가습으로 섬유분자 사이의 결합을 일정하게 강제로 배치시키면서 빠르고 쉽게 섬유를 고정할 수 있는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손상을 입은 직물유물에는 매우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림질은 피하며, 가습과 함께 최소한의 힘만을 가합니다.

주름제거


주름이나 구김과 같은 흔적은 유물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의복의 주름으로는 착용자의 신체적 특징이나 특정한 시기에 유행한 스타일을 엿볼 수도 있고, 보자기에 남아있는 접힘선은 감쌌던 물건의 크기와 형태를 가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물에 담겨진 시간의 흔적은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보존처리 과정에서 다림질에 비해서는 속도가 더디지만 흔적의 가치를 고민하면서 주름을 펴는 방법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보존처리가 ‘유물의 원형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라고 할 때, 외형적 가치, 즉 눈에 보이는 형태의 조화나 아름다움이 특히 중요한 평가를 받는 복식유물은 주름의 종류와 목적을 가려내어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름과 구김 제거 전 후


김선영 (유물과학과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