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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소장품 이야기 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왕실유물 보존처리 이야기

보존처리의 목적과 30cm 법칙

왕실 유물 보존 처리 이야기

유물을 보존처리할 때는 유물이 무슨 재질인지, 어떤 상태인지, 왜 처리하는지, 누가 처리하는지에 따라 재료, 방법, 처리기간, 처리 후 상태가 많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특히 왜 보존처리를 하는지의 목적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자기가 깨지고 일부분이 없을 경우, 개인 소장자들은 깨진 부분을 안보이게 하고 없어진 부분을 원래유물과 똑같이 만들어 감쪽같이 새것처럼 보이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에서는 이와는 다른 기준으로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깨진 파편들을 붙이되 깨졌었다는 흔적이 남도록 하고, 없어진 부분을 만들어내되 원래 부분과 구별되어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유물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적게 보존처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처리입니다. 처리된 흔적을 없애고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이 유물의 안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보존처리(minimal intervention)로 최대의 안정성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가장 효율적인 처리방법과 재료를 고민하고 필요 이상의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박물관에서 이와 같은 목적으로 보존처리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유물을 연구할 때 처리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하여 원래 남아있던 유물에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의 보존처리에서 또 유념해야할 사실은 미적 측면(esthetic aspect)입니다. 보존처리 후에 유물은 최대한 보기 좋아야 합니다. 감쪽같이 새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또 보기에도 좋아야한다면 어느 정도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30cm 법칙’, 국제적으로는 ‘6-feet 6-inch rule’이 있습니다. ‘30cm 법칙’은 30cm보다 멀리에서는 원래 부분인지 보존처리된 부분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30cm 안쪽에서는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6-feet 6-inch rule’은 6-feet(182.88cm)에서는 보존처리된 부분을 구별할 수 없고, 6-inch(15.24cm)에서는 구별할 수 있게 한다는 법칙입니다. 30cm와 6-feet 6-inch는 길이의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같은 개념의 보존처리 원칙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존처리 목적에 따라 처리 방법과 결과물이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① Shepherdess Figure(19C, Staffordshire, England, 개인소장)  

Shepherdess Figure(19C, Staffordshire, England, 개인소장)


이 양치기 소녀 모양의 도자기 인형은 개인이 소장하던 유물로 여러 편으로 깨어졌었습니다. 또한 양의 코 부분을 포함해 소녀의 옷깃, 다리 부분 등이 소실되었고, 표면의 상회칠(overglazed)된 부분이 벗겨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경우는 깨져서 붙인 흔적이 남지 않게 파편들을 접합했고, 없어진 양의 코 부분은 원래의 유물과 구별되지 않게 복원했으며, 벗겨진 상회칠 부분은 전혀 벗겨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색맞춤했습니다. 개인소장자가 깨지지 않았던 것처럼 보존처리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② Pottery Bowl(Late Bronze Age, Lachish, Islael, 대영박물관 소장)
? Pottery Bowl(Late Bronze Age, Lachish, Islael, 대영박물관 소장)

이 토기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소장 유물로 구연의 약 1/3정도가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원래의 형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소실된 부분을 석고를 이용하여 복원하고 색맞춤했습니다. 처리 후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 만들어낸 부분과 원래 유물의 접합선을 그대로 두어 어느 부분이 깨어졌었는지 쉽게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복원된 부분과 원래 유물의 전체적인 색이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③ 옥적(조선시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옥적(조선시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 옥적은 보존처리 전 세 파편으로 부러져 있었고 중간 약 7cm정도가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표면 오염이 심각했고 또한 검정색과 빨간색으로 표기된 유물번호도 남아있었습니다. 먼저 용제들을 이용해 표면 세척을 하고 파편들은 접합선이 보이도록 했습니다. 없어진 부분은 남아있는 부분과 다른 유사 유물들을 참고하여 길이를 추정하고 석고를 이용해 복원하였습니다. 보존처리된 옥적은 30cm 이상의 거리에서는 어느 부분이 복원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30cm 이내에서 살펴보면 쉽게 구별됩니다. 복원부분을 통해 전체 유물 형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색 또한 유사해 멀리서는 크게 눈에 거스르지 않지만 세부사진을 보면 원래의 유물과 복원된 부분이 쉽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모든 유물의 보존처리가 항상 이 같은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로 유물의 보존처리의 목적에 따른 결과물의 차이점과 ‘30cm 법칙’ 이라는 보존처리 기준도 함께 쉽게 이해 하셨길 바랍니다. 앞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중 보존처리된 유물을 찾아보고, 원래의 부분과 복원된 부분을 가까이서 확인하고 멀리서도 비교해보면서, 효율적인 보존처리를 위해서 보존처리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작업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한층 더 흥미로운 전시 관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위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글쓴이가 직접 보존처리한 유물들로 개인 소장자(Mrs. Lyster Cooke, West Dean College에서 보존처리, 2008)와 대영박물관(2009)으로부터 사전 사용 허가받았습니다. 



김효윤(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