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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예약
소장품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신유식년사마방목

辛酉式年司馬榜目

󰡔신유식년사마방목(辛酉式年司馬榜目)󰡕1681(숙종 7)에 설행된 식년시의 사마방목이다. 식년시란, 간지(干支)에 자(((()가 드는 해에 3년마다 정기적으로 설행했던 과거를 말한다.

 

본 책은 시관의 명단, 생원시와 진사시 입격자 명단, 방중색장(榜中色掌)을 비롯한 각종 색장, 연벽(聯璧), 구중(俱中), 복시의 시행 날짜와 시제, 은문연회록(恩門宴回錄) 순으로 시험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했음을 일컫는 용어로 양시(兩試) 대신 구중(俱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 은문연회록에 참여 명단을 기록해 준 점 등이 여타의 방목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특징이라 하겠다.

 

은문연(恩門宴)이란, 과거에 급제한 동방들이 시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는 의미에서 연회를 베풀던 의식을 말한다. 방목의 기록을 통해 해당 시험에 관한 은문연은 시험 이듬해인 16823월 삼청동에서 설행했으며, 이 자리에는 대제학(守兩館大提學) 이민서(李敏敍) 등 시관들과 장원을 비롯한 여러 동방들이 참석했음을 알 수 있다.6년 전에설행했던 시험에서 국휼(國恤)로 은문연을 설행하지 않았던 점과는 대조적이다. (󰡔을묘식년사마방목(乙卯式年司馬榜目)󰡕(고궁3567)시험의 초시는 814, 복시는 10월 초4일부터 시작되어 10월 초9일에 합격자를 발표[出榜]하고 최종 합격 증서를 주는 의식인 방방의(放榜儀)1029일에 행해졌다. 시관은 행 형조판서(行刑曹判書) 남용익(南龍翼) 1소와 2소에 총 12명이 동원되었으며, 생원시에는 장원 민진후(閔鎭厚) 100명이, 진사시에는 장원 조정만(趙正萬) 100명이 합격하였다.

 

부록에는 각 시험의 복시 시제 또한 시소와 과목별로 기록되어 있는데 일소(一所)에서는 부() ‘夢告館羅池’, () ‘擺頭謝韓子’ (압운 ), 오경의(五經義)는 역의(易義)에서 物大然後可關易’, 사서의(四書疑) ‘子曰,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 憤悱者, 則擧一隅而不復者, 何歟가 출제되었다.

 

경외입격수에서는 서울 64인을 비롯하여, 경기 21, 충청도 23, 경상도 31, 전라도 37, 황해도 7, 강원도 4, 평안도 2, 함경도 1, 개성부 4인 등 각 도의 합격자수를 기록해 주었다. 권말에 별다른 간기(刊記)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본 방목의 간행 연대를 알 수 없다.

 

본 책은 본관 소장본 외에 본관 소장본 외에 성암고서박물관(소장기호 : 성암2-727),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소장기호 : () 349.16) 등이 전해진다. 사마방목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구성 내용과 형식에 있어 전기에 비해 몇 가지 변화되는 지점들이 포착된다. 전기에는 시관의 명단 정도만이 권수에 간략하게 기록되는 반면, 후기로 가면서 합격자 명단의 뒤에 부록을 갖추어 각종 색장의 명단과 시험의 시제, 향시의 상황 등까지 기록해 주는 등 명단 외의 시험 관련 정보가 점점 구체화되고 다양화된다는 점이다.

 

본 유물은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는 17세기 이전의 방목에서 시험 관련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 준 19세기 방목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17세기 후반의 방목으로 그 가치가 있다.

 

※목차

 

- 恩門

- 生員試

- 進士試

- 附錄(榜中色掌, 恩門色掌, 試券色掌, 貢布色掌, 聯璧, 俱中, 會試, 京外入格數, 恩門宴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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